아이폰4가 연일 화제다. 애플은 출시 3일 만에 170만 대의 아이폰4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애플의 수많은 히트작 가운데서도 판매 속도가 가장 빠르다. 높은 인기만큼이나 아이폰4의 세부 기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영상통화 기능인 ‘페이스타임’과 인간 망막의 한계에 근접했다는 ‘레티나 디스플레이’에 이어, 최근에는 새로운 안테나 디자인을 두고 말이 많았다. 그리고 그 다음 타자는 아마 ‘자이로스코프(Gyroscope) 센서’의 차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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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DC 2010에서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4의 자이로스코프 센서를 소개하고 있다

이달 초에 있었던 아이폰4 발표에서 놀라운 점 가운데 하나는 지금까지 어떤 휴대폰에도 탑재된 적이 없는 새로운 센서를 하나 더 추가해 넣었다는 것이었다. 바로 자이로스코프 센서다. 이미 아이폰 3GS는 가속도센서, 지자기센서, 조도센서, 근접센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센서가 탑재돼 있었다.

여기에 센서 하나가 추가됐을 뿐인데 왜 이렇게 호들갑일까?

자이로스코프 센서는 기존에 탑재된 가속도센서와 비교해 훨씬 섬세하기 휴대폰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다. 가속도 센서는 단순히 3축 방향의 가속과 감속을 감지하는 반면, 자이로스코프는 높이와 회전, 기울기를 직접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이폰4는 기존에 탑재된 3축 방향의 가속도센서와 새롭게 추가된 자이로스코프 센서를 연계해 6축 방향으로 정교한 모센 센싱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앱 개발자들이 이 기능을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CoreMotion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도 만들었다.

음. 보다 정교한 모션 센싱이 가능해졌다는 것까지는 알겠다. 그런데 이 기능을 어디다가 써먹는거지? 아이폰이 닌텐도 Wii는 아니잖아?

바로 그거다. 아이폰이 닌텐도 Wii 뺨치는 게임기가 되는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4에 자이로스코프 센서를 넣기 전까지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이 센서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게임업계에서는 닌텐도 Wii가 자이로스코프를 활용한 모션 센싱 게임으로 히트를 치면서 핫이슈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실제로 아이폰 게임이 어떻게 바뀌는 것일까. 아이폰용 소셜 게임 ‘위룰’로 국내 사용자들에게도 친숙한 Ngmoco가 아이폰4가 출시되자마자 발빠르게 자이로스코프를 활용한 게임을 선보였다. Ngmoco의 ‘Eliminate: GunRange’는 3차원 공간에 위치한 과녁을 사격하는 게임인데, 과거 유사한 게임처럼 화면을 드래깅하면서 플레이할 필요 없이 휴대폰 움직임만으로 정확하게 과녁을 겨냥할 수 있다.

미국에서 아이폰4를 구매한 한국인 유학생 김종찬씨가 ‘Eliminate: GunRange’ 게임의 동영상을 블로그에 소개했다. 동영상을 보면 첫 번째 장면(1분 10초부터)은 자이로스코프 센서를 끄고 플레이하는 화면이고, 두 번째 장면(2분 10초부터)이 자이로스코프 센서를 켜고 플레이하는 장면이다. 한 번 비교해보시길.


자이로스코프를 활용한 ‘Eliminate: GunRange’의 실행 영상(출처 : www.kimjc.com)

아마도 아이폰 3GS 사용자들은 이런 게임이 전에도 있었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다. 맞다. 아이폰 3GS에서도 가속도센서와 지자기센서를 활용해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구성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가속도센서만으로는 정확도가 떨어져서 때로는 짜증을 유발하기도 했던 이러한 인터페이스가 자이로스코프 센서가 더해지면서 과녁을 겨냥할 만큼 정확하고 편리해졌다.

자이로스코프 센서는 진작부터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게임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던 아이폰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자이로스코프 센서는 단지 게임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분야가 바로 모바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다. 스마트폰에서 보다 실감나는 증강현실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술이 바로 휴대폰의 정확한 움직임을 감지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에도 가속도센서와 지자기센서, GPS와 위치정보(POI)를 활용한 여러 증강현실 기능이 스마트폰에서 구현돼 있었다. 그러나 기존 기술로는 사용자가 바라보는 방향에 정확한 위치정보를 표시해주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고 카메라 화면으로 식당을 비추면, 그 위에 그 식당의 메뉴와 사용자들의 평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실제로는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 옆에 위치한 옷가게 위에 메뉴판이 뜨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화면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면 화면에 표시된 정보가 움직임에 맞춰 따라가지 못하고 화면 위에 둥둥 떠다니기 일수다.

GPS의 정확도를 보정하는 A-GPS 기능이 최신 스마트폰에 속속 탑재되는 가운데, 여기에 자이로스코프 센서까지 추가가 되면 훨씬 정확하게 보여지는 화면 위에 필요한 정보를 띄울 수 있게 된다. 위에서 설명한 위치정보 위주의 증강현실 외에도 마커 인식나 영상처리에 기반을 둔 증강현실도 보다 높은 완성도를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애플은 누구보다도 먼저 자이로스코프를 스마트폰에 탑재하면서 센서 하나를 선택하면서도 미래에 등장할 서비스를 예견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많은 제조사들이(혹은 이들에게 스펙을 요구하는 이통사들이) 최근까지 왜 휴대폰에 지자기센서를 탑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던 것과 대조되는 면이다. 그리고 이러한 애플의 선견지명은 관련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서드파티를 더욱 애플 쪽으로 붙들어 놓을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iSuppli)의 제레미 부쇼(Jeremie Bouchaud) 수석 애널리스트는 “앞으로 경쟁사들이 앞다퉈 스마트폰에 자이로스코프 센서를 탑재하기 위해 뛰어들 것”이라며, “휴대폰용 자이로스코프 센서 시장이 2009년 제로에서 2014년에는 2억8500만 개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표현대로 “스마트폰 시장에 자이로스코프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고 할 만 하다. 그런데 벌써 애플이 자이로스코프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다고 하니, 다른 업체들이 이를 피해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려면 골치를 꽤나 썩힐 듯 하다.

스티브 잡스의 자이로스코프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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