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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story

가문의 유래(뿌리를 찾아서...)

by 눈과비 2010. 8. 4.
  • 2006/10/04 10:48

    순천 김씨 (順天金氏)

 

 1 > 시조 : 김 총[金摠]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순천(順天)은 전라남도 남동쪽에 위치한 고장으로 백제 시대에는 함평이었으나  
     신라 때 
승평으로 고쳤으며, 1310년 순천(順天)으로 개칭하였다.

     순천김씨(順天金氏)는 신라 경문왕의 아들로 태봉국을 세운 궁예의손자 김총(金摠)이시조

     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가 인가 별감을 지내고 평양[순천의 옛지명]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을 순천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전객서령을 지낸 윤인

     (允仁)의 손자 유정(惟精)이 통정대부로 정주목사를 역임하고, 여산군(麗山君)에 봉해졌  

     다 그의 아들 승주는 초명이 을보(乙寶)였으며, 창왕때 풍주의 수령으로 나가 왜구 격퇴에

     공을 세워 조선 정종(定宗)  때 추충익대좌명공신에 올랐다.  이어 공조판서와 평양부윤 등

     을 지냈으며, 태종 때 병조판서에 이르러 평양부원군에 봉해지고,  승주란 이름을 하사받았

     다.  

     특히 조선조에서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명신 종서(宗瑞)를 들수 있다.  
     그는 
태영(台泳)의 손자로 출생하여 16세 때 문과에 급제, 세종이 즉위하자 여러관직을 지

     낸후 1433년함길도 도관찰사로 야인들의 변경침입을 격퇴했고, 육진을 설치하여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선을 확장하였으며  그후 1453년 왕위를 노리던 수양대군에 의해 
     두아들 
승규(承珪)·승벽(承壁), 손자  만동(萬同)·조동(祖同) 등과 함께 격살되고 
     아우 
종한(宗漢)도 화를 입었으며,  승규의 막내 아들만이 어머니를 업고 도망감으로써 
     간신히 일가의 절손됨을 면하게 되었다.  

     작은 체구에 뛰어난 지략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그는 오랑캐를 막기위하여  함경도 8진의 
     지세와 공수방법을 적은 [제승방략]이란 저서를 남겼으며, 호기가를  포함하여 시조 2수

     가  전한다.  

     가문을 더욱 중흥시킨 여물[汝물]은 선조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명으로 신입 장군과

     함께  충주 방어에 나가 충주 달천을 등지고 배수진을 쳤으나 북상하는 적군을 막지 못하여
     탄금대에서 신입과 함께 강물에 투신 자결하였다.

     한편 여물의 아들 [유]는 승문원의 벼슬을 거쳐  광해군 때 강계부사를 지냈으며, 
     인조반정의 공신으로  승평부원군에 봉해지고  병조판서와  대제학을 거쳐 좌의정과 영의

     정에 올라  영국일등공신으로 순천부원군에 봉해졌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순천김씨(順天金氏)는 남한에 총 11,092가구,
     45,62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내유리

경북 안동군 풍천면 구담동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유능리

전남 해남군 해남읍 평동리, 산이면 구성리

     평남 순천군 선소면 남포리

전남 해남군 계곡면 여수리, 방춘리

     경북 문경군 가은읍 작천리